읽기 전에,

주관적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 읽으면서도 반대의 입장도 꼭 생각해보면서 읽어주길 바람.

내가 외국나가 살기로 결심한 이유부터 시작하자.

난,

그냥 잉여였어. 고3내내 CM3(championship manager 3)하느라 그리고 EA Fifa World cup 2002하느라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학교에선 잠만 잤지. 고3 담임은 애들 진학에 딱히 관심도 없는 분이셨고. 고1 고2때부터 학교에서 야자하고 모의고사 성적은 항상 연고 턱 밑이었지만 고3이 젤 중요한데 놀았지. 어머니는 자기 덕에 내가 인서울이라도 갔다고 하셨고 나는 뭔소린가 했지만 나중에 학교 다니면서 그래도 어머니 덕에 인서울이라도 갔구나 싶었어.

고3 올라와서 첫 모의고사 나보다 한참 아래 있던 녀석이 수능보고 연대 붙으면서 나를 깔보면서 지랄할때도 난 아무론 분노도 느끼지 못한

잉여물이었다.

 

그런 내가 대학교 갔다고 바뀌었을까. 맨날 술 마시고 피시방가고 수업 빼먹고 1학년때부터 계절학기로 학점 메꾸고 그마저도 C맞는 병신이었다.

그러던 2004년 어느 날. 공대 특성상 2학년때부턴 교양마저 수학 물리 같은 것만 들어야하고 하나 남은 3학점 여유마저 교수님 강요로 선형대수(수업 이름이 기억이 전혀 나질 않음)같은 걸 들었던 힘든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유로 2004에 푹 빠져있었어. 경기가 새벽 4시쯤 시작해서 아침 8~9시쯤 끝났던거 같아. 매일 2 경기씩. 그런 잉여짓을 하고 있으니까 어머니께서 보기 답답하셨는지 군대 안갈거면 유럽이라도 한달 다녀와바라라고 하시길래 계획도 없이 어머니가 말씀하신 날로부터 일주일도 안되서 난 비행기에 올라탐. 런던 직항. 나름 고2때 토익 850점 가량 맞았던 나인데 첫 입국심사부터 어버버하고 아무튼 한달 여행을 마무리짓고 돌아왔다.

 

2학기 대충 다니다가 군대갔다오고 2007년. 제대 직전에 어머니께서 복학할래 아님 어학연수 가볼래? 하시길래 고민도 안하고 어학연수를

택했다. 난 대학교 친구 당시 어울리면 몇명 빼곤 연락도 잘 안했고 할 의미도 못 찾았고..성격이 원래도 그렇지만 일단 학교에 정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 복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도 시차두고 군대를 갔기에 서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지. 그래서 쉽게 결정했다.

 

이건 준비하는데 2~3주정도 걸렸던거 같아. 빠르게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캐나다는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영어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줬고

관광비자가 또 연장이 되니까 큰 문제가 없었어. 1년을 계획하고 간다면. 아무튼 내면엔 유럽 여행 이후로 외국에 대한 환상이 좀 있었던거

같고 어머니는 나 20살때도 그딴 학교 다닐바에 때려치고 독일유학가라고 하셨는데 웬 독일? (뜬금포) 이라는 생각과 하나뿐인 아들하고 떨어져 지낼 수 없다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유학은 못 갔지만 어쨌든 이런 저런 상황이 내가 지금 이렇게 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던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가 내가 캐나다에 온 이유다. 그럼 캐나다에 오고 나서..

 

캐나다 와서 외국인 친구들도 만나고 학원 진짜 열심히 다니고 이때 영어 참 많이 늘었다. 반 년 학원다니면서 공부하고 나머지 반 년은 여행다니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돌아다녔지. 내가 배운게 여기서 좀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하지만 다시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고

한국에 돌아가서 복학하고 1학기를 더 다녔어. 근데 내가 이때는 공부좀 해보자고 새벽에도 학교가고 그랬던 시절인데 그 시간에 지하철에

사람 꽉 차서 좀비처럼 생각없이 여기저기 쓸려다니는게 소름돋더라. 그러고 결심하고 계획을 장황하게 세우고 아버지께 캐나다 보내달라했지.

 

 

캐나다와서 입학에 필요한 영어점수 획득하고 학교 들어가서 공부하고 여기서 처음으로 영어에 대한 장벽을 크게 느꼈다.

그래도 수업은 잘 따라갔고 점수도 잘 받았고 어린 캐나다 친구들 공부도 가르치고 나도 배우고 잘 지내다가 졸업했지.

기억에 남는 점은 친해진 녀석 집에 초대 받아서 그녀석 부모님 형 형수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식사하고 즐겁게 얘기하고 그랬던게 별거 아닌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다.

 

뭐 자긴 동양인인데 외국애들하고 클럽도 가고 완전 잘 어울리고 논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니까 패스하는걸로.

아무튼 졸업학고 취직하고 차사고 영주권받고 결혼도하고 집도산게 스토린데 너무 내 얘기만 해서 질릴거같아서(이미 질렸는지도 ㅎㅎ) 그만 하는걸로 하자.

 

캐나다에서의 삶 과연 양지만 있는걸까?

내 생각을 얘기해보자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무슨 말인지는 나이먹다보면 자연스럽게 느끼리라 생각한다.

일단 모두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취직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한국에서 살기 힘든 이유 중에 취직을 손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도 똑같다. 다들 캥거루족에 대해서 들어봤을거다. 캐나다는 다를까?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데 하루는 라디오에서

부모님들 인터뷰가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 한달에 얼마씩 쓰느냐에 대한 주제였던거 같다. 손주들 기저귀값부터 자식네 집 관리비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그러면서 집 떠났던 자식들이 결국 경제적 이유로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처음에 연봉 5500만원 받던 시절 얘기를 해보자. 세금을 꽤 떼는 편이므로 월 300만원 조금 넘게 손에 들어왔던거 같다.

근데 월세가 80만원이다. 차 없으면 거의 시내에 살게 마련인데 그럴 경우엔 방 하나 혼자 잡고 살라고 해도 60만원가량 줘야했다.

 

캐나다 물가가 그렇다. 방 하나다. 화장실 주방 모든 것을 룸메이트와 공유해야 한다. 월 60만원으로 살고 싶으면 거실에도 룸메이트가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다. 근데 당시 월세가 폭발하기 직전에 방을 구해서 비록 반지하였지만 혼자사는 원룸을 80만원에 구했다.

물론 내가 구할 당시에는 비싼 편이었지만 개같은 한국인들한테서 벗어날 기회였으므로 비싸도 계약하고 살았다.

 

봄에 주인집 아저씨 잡초뽑는거 도와주고 낙엽치우는거 도와드리고 아저씨 썰 푸는거 들어드리고 아저씨한테 이미지가 좋았는지

그 집에서 사는 한 집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꽤 오래 살았고 그 기간중에 월세가 폭발한게 두 번이었다.

아무튼 나는 수입의 1/4이 월세로 빠지는 가장 이상적인 소비 형태를 갖고 있었고….ㅠㅠ

인터넷 8만원 전화비 7만원 차 보험 월 20만원 남은 차 할부금 월 30만원 등등 이것저것 빠지는 돈이 너무 많았다. 저축이 힘든 지경이었으나

집을 사기 위한 초석을 닦아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었다. 한국에선 차 없어도 살 수 있었고..

내가 당시 캐나다에 갈때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터지면서 세계적 불황이었고 미국의 속국(아닌 나라가 얼마나 있겠느냐마는)이라고 생각하는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복세는 보이지 않았고 다만 고유가로 에너지쪽 경기는 꽤나 풀려갔다. 그리고 지난 해 말부터 이어진 저유가에 저환율 정책으로 에너지 업계는 파탄 그 여파는 타 업계에도 미치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집세는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가 휘청일땐 다른 나라도 똑같이 휘청인다는 말이다. 사람 사는 곳이 그렇다.

이곳의 학연 지연 혈연은 금지되어있지 않다. 한국에서 그랬다간 욕먹겠지만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이게 나같은 외국인에겐 어쩌면 유리천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회사 다니는 이유도 교수추천 덕분이었을까.

하지만 양지도 있다.

제일 궁금할거 같은 업무과 여가생활에 대해 얘기해보자.

일단 우리 회사는 공식적으로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다. 9시간. 일은 8시간 하지만 중간에 휴식을 가져야하는 노동법이 있다.

하지만 나는 매니저들과 사바사바하여 오전 7시 출근 오후 3시반 퇴근을 공식적으로 박아둔 상태다. 매일 지키냐고? 내가 기계도 아니고.

출근은 더 늦게 퇴근은 더 빨리가 내 철칙이다. 대신 나는 업무량은 남들 8시간 할거 6시간안에 끝내기 때문에 딱히 태클걸리는 일은 없다.

양심있는 사람들은 칼같이 지키겠지만 회사에서 내 경험상 시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은 잘 못봤다. 그만큼 자유롭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업무 환경이다. 능률이 떨어지는 사람은 불경기에 칼같이 정리당한다. 불경기라고 회사에서 직원들 정리중일때 우선 순위이다.

빠른 퇴근은 긴 여가시간을 갖게 해준다. 이런게 서양 사람들이 스스로 집을 레노베이션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더 갖게 해주는 이유이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간혹 캐나다는 너무 심심해..라며 캐나다에서도 한국에서처럼 노는 친구들이 많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여름엔 캠핑도 가고 가까운 거리에 대 자연이 펼쳐져 있다. 겨울에는 겨울 스포츠가 있고.

 

 

캐나다 좋다 vs 나쁘다

 

나는 여기에서 살고 정착했으므로 당연히 좋다.

근데 주변에 영주권 받고도 한국 돌아가는 경우들이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고 너무 여유있는 생활이 안 맞는다던지..

적응 못하면 나쁜게 당연하다고 본다. 사람이 다 똑같을 수 없으므로 존중해주고 싶다.

해주고 싶은 말

이민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어제 올라온 다큐 캡쳐글에서도 나오듯 기술있는 사람들.

근데 내가 알기로 요리사쪽은 지금 막힌걸로 알고 있다. 다큐에 나온 친구는 저 나이대 (보이기로 20후반 30초반) 친구들이 갖는 경력에 비해

페이도 많이 받는 편이고 아마 영주권도 받았겠지.

치기공 좋다는 얘기도 다 옛날말이고. 근데 옛날엔 진짜 영주권 프리패스였다고 한다. 아는 부부가 한국에서 치기공하던 학교 선후배였는데

캐나다와서 둘이 결혼했다. 둘다 영주권 빨리받고 경력도 좀 있어서 페이도 괜찮게 받고 있다. 근데 이쪽도 3D 프린팅 때문에 많이 죽을걸로 알고있다. 옛날만큼 프리패스는 아니란 말.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이 사람 3천명사는 조그만 타운에있는 주유소라든지 모텔에서 일을 한다. 목적은 영주권이다. 영주권 전에 워크퍼밋이 목적이겠지만. 이쪽으로 영주권 받는건 정말 너무 고된 일이다. 내가 학교 들어가기전에 시간이 너무 붕떠서 3주정도 노가다를 해본 적이 있다. 그때 알던 형이 당시에도 캐나다에서 3D 업종에서 일을 좀 했었는데 나 영주권 받을때까지도 못 받았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막연한 환상을 갖고 오는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1년이라도 살아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석박사라면 영어공부해서 이민하는거 추천하고 싶다. 회사에도 그렇고 요즘 들어오는 외국 사람들 고학력이 많아졌다.

정부가 지향하는 이민자도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조건을 까다롭게 줘서 필요한 인재만 받겠다는 말이다.

요즘은 나도 차라리 내가 이정도 노력 할 것이었으면 한국에서 할걸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이니까..

두서없고 정리도 안된 글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고,

세줄 요약은 필수인듯 싶어서

1. 나는 잉여롭게 20 초반을 보냈다.

2. 캐나다 오고 사람이 바껴서 공부 열심히하고 취직해서 살고있다.

3. 근데 막연한 환상만 갖고 오는건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