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누나를 때렸습니다. 아주 심하게요.

누나한테 어렸을때부터 수도 없이 맞으면서 자랐습니다.

제 장난감 자기 안준다고 때리고.

제 고기 반찬 자기 안준다고 때리고.

그냥 눈만 마주쳐도 기분나쁘다고 때리고.

그냥 어깨나 가슴팍을 밀치는 정도가 아니라

얼굴이나 뒤통수, 배나 명치, 심지어 다리 사이 그곳도 수도 없이 맞았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형제자매끼리는 싸우면서 크는거라고

그리고 남자니까 네가 참으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계속 맞으면서 커왔습니다.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지만

20살이 되고 대학교에 들어가니 저도 동기들이랑 친해지게 되더라고요.

그 중에는 당연히 누나가 있는 애들도 있었죠.

술자리에서 누나 얘기가 나오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우리 누나 얘기를 해줬는데

동기들은 처음에는 야, 너도 누나한테 쳐맞으면서 자랐냐 ㅋㅋㅋㅋ하면서 웃다가

제가 얘기를 계속하니까 표정들이 점점 굳어지더라고요.

자기들도 누나한테 많이 맞았지만 대부분 그냥 장난이었고

저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일방적으로 엊어맞은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가정 폭력 아니냐고.

진지하게 경찰에 신고해야하는게 아니냐고.

분위기가 무거워지니까 저도 웃으면서 내가 오바한거고 실제론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동기들도 그럼 그렇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누나는 계속 저를 때렸습니다.

남자친구가 자기 마음에 안드는 말을 했다고 때리고

조별 과제에서 팀원들이 자기 이름 뺐다고 때리고

들어가고 싶은 회사 원서 떨어졌다고 때리고

물론, 여전히 눈만 마주쳤는데 기분 나쁘다고 때리고요.

솔직히 저도 이미 알고 있었죠.

이게 정상은 아니라는거.

제가 무슨 바보 천치도 아닌데.

그래도 그냥 참았습니다.

누나를 사랑하고 아껴서 그런게 아니라

부모님 걱정시키고 속 썩이고 싶지 않아서요.

어머니는 건강이 많이 안좋으시고

아버지는 운영하시는 편의점이 잘 안돼요.

인건비도 많이 오르고 주변에 다른 편의점들도 많이 생겨서.

안그래도 힘든 부모님 더 고생시켜드리기 싫었어요.

남들처럼 연애하고 놀러다니는 행복한 인생도 필요없고

빨리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벌고

이놈의 지긋지긋한 집구석이나 벗어났으면 좋겠다,

다 필요없고 쳐맞고 사는 인생만큼이라도 하루빨리 청산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구질구질한 인생 불평불만 없이 견디며 살아서

하늘이 기특하다고 상을 내려줬나봅니다.

회사 신입사원 OT에서 지금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저는 워낙 얻어맞으며 커와서 그런지

얼굴 표정도 어둡고 항상 지나치게 방어적입니다.

사귀자고 먼저 고백했으면서 제대로 리드도 못해서 많이 답답했을텐데

연애 경험 많은 여자친구는 항상 웃어주면서 저를 이끌고

여기저기 많이도 놀러다녔습니다.

모텔도 여자친구가 먼저 가자고 했어요.

솔직히 여자가 먼저 그런 말 꺼내는거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웠을텐데

아직도 여자친구에겐 정말 고마운 생각밖에 없습니다.

하여튼, 방에 들어가서 서로 옷을 벗으니

여자친구가 놀라죠.

시퍼런 멍이 온몸에 나있으니까.

처음엔 대충 얼버무렸어요.

회사 들어오기 전에 돈 벌려고 공사 현장에서 일을 좀 했거든요.

거기서 생긴 멍이라고.

그 다음번에 또 멍 얘기가 나올때는 계단에서 굴렀다고.

처음엔 여자친구도 믿었습니다.

그래도 한계가 있죠.

공사 현장일은 회사 들어왔으니 그만둔지 오래고

계단에서 맨날 구르는것도 아닐텐데

몇주가 지나도 멍은 왜 자꾸 안지워지고

오히려 멍 위치가 바뀌어서 계속 생기는데

안들키는게 이상하죠.

미안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여자친구는 계속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나중에 꼭 무슨 일인지 말해준다고 약속받고 더 추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밤에 집에 가서 누나한테 말했어요.

나는 이제 키도 185가 넘어가고 군대에서부터 계속 헬스도 한거 누나도 알지 않나.

지금이 초등학생때 누나가 덩치 더 컸을때도 아니고

나도 이제 회사까지 다니는 스물 여섯살이다.

나도 내 인생이 있고 이젠 더 이상 이렇게 쳐맞으면서 살 순 없다.

한번만 더 때리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누나가 눈이 세모가 되어서는 주먹을 쥐고 달려들더군요.

광대뼈쪽에 누나 주먹이 꽂히는게 느껴지고

그 뒤로는 이성을 잃어서 기억이 안나네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누나가 바닥에 웅크려서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누나가 피떡이 되어있는걸 보니

내가 정말 심하게 패긴 했겠구나… 하고 짐작만 했죠.

아버지가 야간 알바랑 교대하고 집에 들어오셔서

저도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아버지가 눈물을 쏟으시면서

너희 누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취업도 안되서 많이 힘든거 알텐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죄송하다, 제가 잘못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잘못했다는 생각은 솔직히 눈꼽만큼도 안들었는데

그냥 그렇게 말했어요.

여기까지가 일주일전 일이네요.

그 뒤로는 누나는 저랑 눈도 안마주칩니다.

남매 사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난 것 같은데,

후회는 커녕 이제 더 이상 안맞아도 되서 좋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남한테 폐 끼치는걸 정말 싫어해서

살면서 맞아본적은 수도 없이 많아도

때려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저한테 처음 맞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인 누나라는게 좀 우습네요.

욕하셔도 상관은 없는데,

솔직히 기분은 굉장히 상쾌하고 좋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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