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쩌는 의사의 남고딩 치료썰 ㅋㅋㅋㅋㅋㅋ

1.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응급실 근무 중 앳된 남고생이 하나 들어왔다. 단정하게 깎은 머리에 수수한 옷을 입은 평범한 인상의 고등학생이였다. 나는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을 땐, 그 사람을 쓱 보고 왜 여기 오게되었는지를 맞춰보는 습관이 있다. 그 직감은 때때로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그 고교생은 어디 다친 곳도 없었고, 그리 불편한 표정도 없이 진료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이 새벽에 왜 온거지? 도저히 이 친구는 알 수가 없군.’ 혼자 생각하며 환자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가 대답한 내용은 도저히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환자용 의자에 앉지 못하고 진료실 복판에 우뚝 서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 말하지 못할 부분에 쉐이빙 크림 통이 들어가버렸어요. 일부 말고 전, 전부 다요…’ ‘여기는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말하는 곳입니다. 그게 어디입니까?’ ‘항문이요… 그게… 저, 샤워를 하다 미끄러져서 넘어졌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깐 바닥에 놓여 있던 긴 쉐이빙 크림 통이 없어졌더라고요… 뿅 하고 사라진 것처럼, 감쪽같이요.’
윽. 나는 참 감쪽같지 않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실룩거리는 얼굴 가죽을 붙들며 말했다. ‘일단, 환부부터 보고 확인해봅시다. 앉지 말고 곧장 엎드려 누우세요. 앉으면 아무래도 불편할테니까요.’ 웃음을 참으라 이를 악물었기 때문에 내 발음이 참 웃기게 들렸다.
바지를 까 보니, 확실히 들어 있었다. 뒤집힌 반구형의 은색 물체가 아주 비좁은 틈 사이로 보였다. 그것은 보이는 몸집의 몇 배가 심해에 묻혀있는 빙산의 일각이나, 가도가도 끝이 없는 우주지만 태양계밖에 닿지 못하는 지구의 현실처럼, 저 뒤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이 광활한 세계가 숨어 있음을 시사했다. 손을 집어 비좁은 틈을 벌려 보았으나 뒤집힌 반구형 은색 바닥의 지름만 약간 커져 보였다. 곧장 빼려는 시도를 해 보았지만, 그것은 촘촘한 창살 안에 갇혀 도저히 탈옥할 수 없는 죄수같았고, 시도할수록 저 너머로 환자가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져왔다. 나는 이 방법을 포기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친구도 이걸 혼자 한 번 해 봤겠지. 아니, 여러 번 했을꺼야. 병원만은 도저히 안돼… 쪽팔려… 이렇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그리고 곧 자신의 처지가 탈옥할 수 없는 죄수와 같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에서 할 거짓말을 필생의 창의력을 발휘해 지어내고 있었겠지. 하늘이 노래졌었겠군. 그나저나, 이친구, 창의력이 제법 대단한데?

2.
엑스레이에선 형체가 하나도 망가지지 않은 길이 십여센치의 쉐이빙폼이 찍혔다. 윗 부분의 분사구와, 아래의 반구 모양, 긴 몸통도 의료용 엑스레이로 정밀하게 잡혀 나왔다. 그 모양은 너무 온전해, 마치 누가 손에 들고 그 통을 잘 찍어 놓은 것 같았다. 그걸 들고 있는 것은 그의 직장直腸이였지만 말이다.
스테이션에 돌아가니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 간호사들이 그의 챠트를 열독하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 이 언급의 진위 여부와,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는 것에 관한 것이였다. 크게 두 파였는데, 첫 번째는 쭈그려 앉아서 재미(?)를 봤다는 거고, 두 번째는 서서 봤다는 건데, 쭈그려 앉아서 봤다는 파가 훨씬 우세했고, 반대파는 어찌 그걸 그렇게 잘 아느냐는 말로 응수했다. 그 와중에 넘어져서 진짜로 들어갈 수도 있는 법 아니냐는 순진무구한 친구와, 쉐이빙 폼이니 밑엘 면도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개그욕심 충만한 친구가 소수의견을 내고 있었다. 새벽 시간이라 한가했던 그녀들은, 토의가 길어지자 이 승부를 떠나 그 난상토론을 한없이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환자를 불러 입원과 수술에 관해 설명했다. ‘자, 그게 그러고 있으면 말할 수 없는 곳이 제 할 일을 못하겠죠. 왠지 끔찍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 날이 밝는데로 수술을 할껍니다. 수술은 간단합니다. 환자분을 마취제로 재우고, 전신마취 상태서 근이완제를 듬뿍 쓸 껍니다. 그러면 이름을 말할 수없는 곳에도 기운이 빠지겠죠. 그러면 그걸 충분히 벌려서 빼낼껍니다. 들어갈때보다도 훨씬 많이 벌려야 그 긴걸 빼낼 수가 있겠죠. 수술 후에 며칠은 누워만 지낼껍니다. 그걸 그정도까지 벌리면 보통 사람들은 꼼짝도 못해요. 상상해봐도 그렇죠? 한 일주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마약성 진통제 신세만 질껍니다.’
아마 지금부터 암 수술때문에 배를 열어 당신의 장기를 만진다고 하거나, 부러진 사지를 한꺼번에 맞춘다고 했어도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인생에 있었던 우환이 한꺼번에 찾아온 표정을 짓다가, 곧 사태를 인정하고 절인 배추처럼 시무룩해졌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입원 대기로 특별히 마련된 구석 침대에서 밤새 안정을 취하고, 다음날 찾아올 믿을 수 없는 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3.
이른 아침엔 환자의 어머니가 비보를 듣고 찾아왔다. 도저히 전화로 실상을 말할 수 없어 그냥 급한 일이고, 응급 수술을 해야하니 얼른 오라고 전화한 모양이였다. 어머니는 도착하자마자 주치의인 나를 붙들고 물었다. ‘우리 아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정말 그렇게 급히 수술이 필요한가요?’ 나는 일단 아무도 없는 진료실로 보호자를 안내하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환자가 한 말 부터, 의학적 상태까지도 가감없이 그대로. 어머니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변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우리 애가… 수능이 십 칠일 남았어요…’ 순간 환자의 평생 우환이 겹쳐진 표정과 어머니의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이 영화 말미의 반전 부분에서 필름 지나가듯 휘리릭 겹쳐 지나갔다. 그 반응들을 전부 이해시키는, 상황을 꿰뚫는 한마디였지만, 그 말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4.
어느 때처럼 간 밤의 내원 환자와 현 재원 환자의 브리핑을 하고, 아침 회진을 돌았다. 언제나 엄숙한 과장님은 예의 근엄한 얼굴로 번뜩이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순서대로 환자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우리 의료진은 묵묵히 아침마다 벌어지는 그 의식을 따라 회진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저 한 구석 커튼 뒤에서 모자母子의 대화, 아니 말다툼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건 이런 식이였다. ‘아이구 이놈아. 수능이 십칠일 남았다. 그동안 공부도 못하잖니. 정신도 못차리는 놈아,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 대학에는 갈꺼냐.’ ‘ 엄마. 쪽팔려. 그만해.’ ‘아니 니가 무슨 암이라든지, 폐병이라든지, 아니 차라리 감기여도 말도 안한다. 아니 어디 몸이 아픈것도 아니고…’ ‘ 엄마 쪽팔려. 그만 하라니까.’ ‘니가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무슨 질병이…’ ‘엄마 그만 좀. 그게 여기 들어있는데 어떻게해.’ ‘그러니깐 그게 왜 거기 있냐고. 그걸 왜 거기다가….’ ‘엄마 제발 조용히 좀. 옆에서 들어. 쪽팔려. 제발.’ 감정이 폭발한 어머니와, 쪽팔린 아들의 대화는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가 듣기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 대화가 계속되자 우리는 과장님 등 뒤에 숨어 고개를 돌리고 이를 악다물고 키득대기 시작했다. 아마 한 명만 못참고 웃어버렸으면 다들 쓰러져 웃어버렸으리라. 하지만, 엄숙한 회진 시간동안 우리는 의료인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하고 있었다. 나는 주치의라 과장님 뒤에 숨을 수 없어 옆에 서 있었는데, 얼굴 근육이 마비되고 정신이 거의 몽롱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과장님은 아랑곳없이 아무 눈치 없는 복통 환자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나는 역시 과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존경심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응급실 창 밖으로 햇살이 내리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과장님의 얼굴에 볕이 비쳤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근엄한 과장님의 번쩍이는 금테 안경 뒤로 씰룩거리는 눈주름과 맺힌 눈물이, 이를 악물어 어긋나는 양측 턱이,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패인 볼 살이. 아, 언제나 진중했던 과장님도 지금 필사의 노력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그 말할 수 없는 곳에 관한 이야기와 아침부터 벌어진 모자의 언쟁은 우리 전부를 가보지 못했던 니르바나Nirvana로 인도했던 것이다.

출처 ㅊㄹㅊ블로그/xinsi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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